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501-190 광주광역시 동구 학1동 5번지 TEL: 062) 232-1242 FAX: 232-5165
1. 略史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 5월 20일에 설립된 光州醫學專門學校는 교수 확보에 많은 애로를 겪었다. 초대 생리학 교수는 일본인 管龍雄인데 京城帝大에서 파견된 젊은 분으로서 패전 직전에 본국에 귀국하였으므로 이 학교가 설립이 된 지 1년 3개월 만에 조국 해방을 맞이하였을 때는 전임교수가 없었다.
해방 후 우리나라 자연과학 분야는 모두 같은 실정이었지만 생리학 분야에서도 인력난으로 많은 애로를 겪었다. 일제시대 때 생리학 분야에서 교수직에 있었던 분은 李鍾綸(京城女子醫學專門學校 교수), 李甲洙(경성제대 강사), 金鳴善(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등 세 분뿐이고 조교 또는 연구원의 경력을 가진 분도 극소수였기 때문이다. 해방 후 광주의학전문학교 崔相彩 교장은 친구인 이종륜 교수(경성대학)와 이 교수의 교실원이었던 金鳳漢(1942년 경성제대 졸업)을 시간강사로 발령하였으나(1945. 11. 1) 김봉한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전출되었으므로 이종륜 교수만이 주기적으로 광주에 와서 강의를 담당하였으며 이와 같은 현상은 1948년까지 지속되었다.
이종륜 교수는 서울 출신으로서 1924년 京城醫學專門學校를 졸업하고 동교 생리학교실 조수가 되었다. 1926년 경성제대에 의학부가 신설되고 경성의학전문학교의 생리학 주임교수인 中西政周 교수가 경성제대의 제1생리학교실의 주임교수로 부임하게 되므로 그를 따라 경성제대 생리학교실 조수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에서 1932년 의학박사학위(경성제대 제3호)를 받고 경성제대 강사(1933-1938) 겸 경성의학전문학교 강사(1935-1937)로 재직하다가 1939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하였고 1945년에 해방을 맞이하였다. 해방 후 이종륜 교수는 경성대학 생리학교실 및 경의전 생리학교실의 주임교수를 겸직하였고 이 두 학교가 1946년 국립 서울대학교로 개편되매 동 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주임교수가 되었다.
1946년 9월 1일 광주의전이 광주의대로 승격되었다. 최상채 학장의 청에 의하여 1948년 6월에 이종륜 교수는 광주의대 생리학교실 주임교수 겸 부학장으로 부임하였다. 일제 말기에 광주 수피아여학교를 임시교사로 하고 개교하였던 본 대학은 미군 진주로 교사를 내놓게 되어 광주 중앙국민학교-광주여고-舊 府立사범학교 등을 전전하다가 현 위치 즉 광주시 학동 5번지에 교사를 마련하였으니 해방 직후에는 생리학교실마저도 없었던 것이다. 1948년 약리학교실이 준공되어 방 2개를 빌려 생리학교실로 사용했다. 이때 각 기초학교실은 단독건물이었고 전임교수가 있던 교실부터 교실을 신축했던 것이며 이와 같은 사연으로 생리학교실의 신축이 늦어졌던 것이다. 1949년 7월 1일에 처음으로 金光振이 생리학교실 조교로 발령되었으나 1950년 전란 중에 실종되고 말았다.
1952년 6월 1일 吉洹植이 광주의과대학 생리학교실 조교로 발령되었고, 1952년 6월 9일 광주의대가 모체가 되어 국립 전남대학교가 창설되매 본 교실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로 개칭되었다. 1954년에는 약리학교실 옆에 생리학교실이 신축되어 이전하였고 길원식은 전임강사로 승진하였으며 1966년 교수로 승진하여 1993년 2월28일로 정년을 맞았으니 재직기간 40년 9개월에 이른다. 길원식은 그 기간에 미국 뉴욕대학 유학(1955-1956), 일본 오사카의과대학 및 Singapore대학 연수 등을 거쳤다. 길원식 교수의 전공은 자율신경생리학이다.
1957년 대학원 학생으로 교실에 들어온 金在浹은 조교(1961)를 거쳐 1963년에 전임강사로 발령받았다. 1964년에 미국 Tennessee 대학에 유학하여 3년간 전정계의 자세 및 운동조절에 관한 연구에 종사하였고 1976년 교수로 승진하여 1995년 정년퇴임 하였다. 그는 1982년에는 문교부 지원으로 서독의 Max-Plank 뇌연구소 및 Zürich 뇌연구소를 방문하여 학술 교류에 공헌하였다. 김재협 교수의 전공분야는 전정계의 자세 및 운동조절 등 중추신경생리학 분야이다.
해방 후부터 1970년까지는 교실로서 많은 애로를 겪었던 시기이다. 사회혼란도 격심했지만 인력난에 허덕였다. 기초의학을 전공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어 조교를 구하기가 어려웠으니 학생실습에 막대한 애로를 겪었다. 이런 시기에 李俊熙(약사)가 조교로 임명받아(1965-1968) 학생실습과 교실운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70년에 崔致時, 1974년에 黃正民이 각각 교실에 들어와서 비로소 교실에 활기가 있는 듯하였으나 각기 대학원 과정을 끝마치고 교실을 떠났다. 최치시는 군 복무를 끝마친 후 도미하여 심장내과학을 전공하고 전문의 자격을 획득하였다. 황정민은 1984년 원광의대 생리학 조교수로 전출하여 활약하였으나 1986년에 학교를 사임하고 임상의로 종사하고 있다.
1976년에 李鍾銀이 교실에 들어와서 소정의 대학원 과정을 끝마치고 미국 Michigan 대학(1985-1987)에서 신장생리학을 전공하여 많은 업적을 낸 바 있고 1993년 교수로 승진하였다. 朴炳林은 1978년에 교실에 들어와서 대학원 과정을 끝마치고 도미하여 뉴욕 록펠러대학 및 베일러 대학(1984-1986)에서 자세 및 운동조절에 관한 연구에 종사하여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원광의대로 전출하여 활약하고 있다.
1982년에 현 전남의대 제2호관이 신축되자 교실은 이 건물의 3층으로 이전하여 금일에 이른다. 1982년에 朴斯薰, 1984년에 朴哲淳이 각각 교실에 들어왔다. 박사훈은 1991-93년 미국 Miami대학에서 중추신경생리학을 전공하고 귀국한 뒤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박철순은 1992년 교실을 사임하고 임상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1987년 치과대학에서 파견 온 金原載는 대학원 과정을 끝마치고 계속 타액선생리 연구에 종사하고 있고, 1988년에 들어온 朴鍾成은 소정의 대학원 과정을 끝마치고 1992년 8월 전임강사 발령을 받았다. 1991년에 들어온 丁漢聲은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군에 복무 중이며, 1993년에 들어온 兪光在는 조교로 근무하고 있다.

 
2. 역대 교실원 명단
이 름
재직연도
최종 또는 현재 직급
타학회 활동
李鍾綸
1948-1962
교 수
吉洹植
1952-1993
교 수
金在浹
1957-1995
교 수
신경생물학회
黃正民
1974-1978
전임강사
李鍾銀
1976-
교 수
대한신장학회, 대한순환기학회
朴炳林
1978-1988
조 교 수
朴斯薰
1982-
조 교 수
미국 신경과학회
朴哲淳
1984-1992
전임강사
朴鍾成
1988-
전임강사
金光振
1949-1950
조 교
李俊熙
1965-1968
조 교
崔致時
1970-1972
조 교
丁漢聲
1991-
조 교
兪光在
1993-
조 교
 

3. 연구 활동

본 대학의 전신인 광주의학전문학교는 태평양 전쟁 말기에 설립되어 당시에는 학생교육 및 연구 기구를 확보하지 못하였고 해방 직후에도 이들 기자재를 구득할 만한 여건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종륜 교수가 광주의과대학의 전임교수로 부임할 때 많은 실험기구를 구득하였다. 그 실험기구들은 당시에 긴요히 사용되는 중요한 연구기구로서 신경-근표본에서의 자극생리학과 분비선 및 평활근의 신경생리학 등의 연구는 가능했다. 그러나 해방 후의 사회혼란과 인력난으로 학생교육은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전국적이었으므로 연구분위기를 함양하고 연구열을 고취하기 위하여 李甲洙, 李鍾綸, 金鳴善, 李炳熙, 南基鏞 등 제 교수가 주축이 되어 1945년 11월30일 대한생리학회를 구성했던 것이다. 이종륜 교수는 일정 때 경성의학전문학교(1924-1926), 경성제국대학(1926-1938),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1939-1945) 등의 생리학교실에서 자율신경계 분야의 연구에 종사하여 많은 연구업적을 남겼으며 그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우나 '회맹괄약근의 자율신경 지배', 'Pavlov의 조건반사에 의한 타액분비의 신경성 기전' 등의 연구업적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해방 후에는 학생교육과 교실원의 연구지도에 힘썼고 1962년 정년퇴임 하였으며 1954년부터 1965년까지 학술원 자연과학부 제4분과위원장으로 활약하다 1965년에 별세하였다.
1952년 길원식이 교실에 들어온 후부터 본격적인 연구활동이 시작되었다. 길원식은 타액선의 신경지배 및 그 생리적 기능에 관한 연구에 착수하였으며 1958년 본 대학 이비인후과학교실의 張寅源이 이 분야의 연구에 함께 참여하였다. 길원식은 1960년에 '家猫の顎下腺分泌機能に關する硏究 - 所謂 交感神經分泌に就いて'라는 논문으로 日本東京女子醫科大學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게 되었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대학원생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길원식 교수가 정년퇴임을 맞이할 때까지 시행했던 연구분야는 자율신경계 중에서도 타액선, 위장관, 방광 및 골반 내 장기 등을 연구대상으로 하였으며 특히 타액선과 방광의 자율신경지배 및 그 생리적 기전에 관한 연구에 치중하였고 본인 논문과 지도논문을 합하면 약 130여 편에 이른다. 이 분야의 연구에 참여했던 교실원은 최치시(1970-1972), 이종은(1976-1985), 박사훈(1983-1991), 김원재(1987-현재), 정한성(1991-1993) 등이다. 길원식 교수는 국내외 학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한생리학회 이사 및 회장, 그리고 국제생리학회 대의원(1977)을 역임하였으며 1991년에는 저서 『자율신경계』(서울, 고문사), 그리고 1993년에는 『타액선의 신경성조절』(광주, 금성출판사)』을 출간하였다.
1957년 교실에 들어온 김재협은 처음에는 원측결장을 지배하는 하복신경(교감신경)의 성질에 관한 연구에 종사하였다. 1963년 미국 Tennessee대학에 유학한 것이 계기가 되어 미개척분야인 전정계의 자세 및 운동조절에 관한 연구에 종사하게 되었다. 재미 3년간에 전정척수계의 dynamic stimulation에 대한 반응, 제뇌 고양이에서의 전정타원낭신경자극이 신장반사에 미치는 영향 등을 규명하여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였다. 1965년 귀국 후에는 전정의 반규관을 수용기로 하는 반규관-안구반사, 반규관-경부반사 등을 규명하고 주로 수용기와 효과기 간의 기능적 관계를 규명하여 기존 연구자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새 지견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연구를 시행하는 데는 종래의 실험기구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어 많은 애로를 겪은 끝에 성능이 좋은 Polygraph를 구득하여 이와 같은 연구를 시행할 수 있었다. 본인 논문과 지도 논문을 합하면 약 127편이다. 이 분야의 연구에 참여했던 교실원들은 황정민(1974-1976), 박병림(1978-1987), 박철순(1984-1990), 박종성(1988-현재), 정한성(1993-현재) 등이다. 김재협 교수는 국내외 학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한생리학회 이사 및 회장을 역임한 바 있고 영국에서 개최된 한 영 일 합동생리학회(1991)에서 한국대표로 크게 활약하였다. 1992년에는 『전정계의 자세 및 운동조절』(금성사)이라는 단행본을 발간하여 이 분야의 귀중한 문헌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Wunsch 의학상을 받았다.
1976년 교실에 들어온 이종은은 타액선, 방광 및 기타 평활근 등의 자율신경지배에 대한 연구에 종사하다 1985년 도미하여 Michigan 대학에서 신장생리학의 연구에 열중하였다. 이 분야 중에서도 특히 Renin, Atrial natriuretic factor 등과 고혈압과의 관계를 규명하여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였고 귀국 후에도 이 분야의 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혈관평활근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그리고 1990, 92년 2차에 걸쳐 일본 大阪大學을 방문하여 'micro-puncture technique' 및 'patch-clamp technique'을 습득하여 새로운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1978년에 들어온 박병림은 전정계의 자세 및 운동조절에 관한 연구에 종사하였고 1984년 도미 후에도 같은 연구에 몰두하여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들을 게재하였다. computer를 이용한 분석적 연구이며 단일신경세포에 미세전극을 삽입하여 potential recording을 하는 섬세한 연구이다. 그 밖에도 중추신경생리학 및 인체를 대상으로 내이의 기능검사를 분석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1987년에는 원광대학으로 전출하여 골격근 마비환자의 근에 미세전극을 삽입하고 전기자극에 의한 기능 복구를 시도하는 첨단적인 의료시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1982년에 들어온 박사훈은 자율신경계 중에서도 타액선에서 야기되는 반사성 분비의 신경기구, 반사성 타액분비와 선혈류와의 관계에 관해서 많은 연구업적을 남겼다. 1991-93년에 미국 Miami 대학에서 중추신경분야의 연구에 종사하였다.
자연과학분야에서의 기술교육 및 학문연구에는 필연적으로 연구인력, 연구시설, 연구비 등이 요구된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여러 가지 사회여건으로 교육 및 연구기관으로서 구비해야 할 기본적인 기자재마저도 확보하지 못하였지만 EXIM차관(1981)과 OECF차관(1988) 사업으로 최소한의 기본적인 기자재를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일진월보하는 자연과학의 발전속도에 발맞추어 새로운 연구기구를 구득할 수 없으니 연구기관으로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1) 역대 교실원들의 주요 연구 분야

이름
연구분야
이름
연구분야
李鍾綸
자율신경
金光振
자율신경
吉洹植
자율신경
金在浹
전정계
李俊熙
자율신경
崔致時
자율신경
黃正民
전정계
李鍾銀
고혈압 병태생리
朴炳林
전정계
朴斯薰
타액분비의 신경성 조절,
척수신경로의 기능
朴哲淳
전정계
朴鍾成
전정계
丁漢聲
타액분비의 신경성조절, 전정계
兪光在
신장생리

2) 연도별 연구논문 발표 현황

연도
59-60
61-65
66-70
71-75
76-80
81-85
86-90
91-95
합계
국내학술지(계)
6
8
31
47
35
32
36
23
218
대한생리학회지
4
2
3
1
5
7
22
전남의대잡지
2
7
44
31
29
20
3
136
Chonnam J Med Sci
11
4
15
전남대학교논문집
4
4
대한의학협회지
1
1
대한비뇨기과학회지
1
2
3
대한신장학회지
2
2
대한마취과학회지
1
1
대한신경외과학회지
1
1
순환기
1
1
대한남성과학회지
1
1
Korean J Med Sci
2
2
Korean J Int Med
1
1
최신의학
2
2
중앙의학
5
5
현대의학
1
20
21
국외학술지(계)
3
2
13
16
34
J Neurophysiol
2
1
3
Brain Res
1
1
Am J Physiol
4
4
Proc Soc Exp Biol Med
2
3
5
Hypertension
1
1
Clin Exp Hyper
1
1
Transplantation
1
1
Nephron
1
1
Neurosci Lett
1
1
J Neurotrauma
1
1
기타
1
2
3
9
15
 
4. 교육 활동

학생교육은 강의와 실습으로 이루어짐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해방 전과 해방 후 15년간은 본 대학의 모든 여건이 이 두 가지를 만족스럽게 실시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1945년부터 1947년까지는 전임교수가 없어 이종륜 교수가 출장강의를 하는 시기였고 1948년부터는 이종륜 교수가 전임으로 부임하였으나 혼자서는 강의마저도 힘들었던 시기이며 1952년에 길원식 조교가 들어와서 제한된 실습과제를 demonstration으로 대체했다. 그때의 교과과정이 지금과는 달리 1학년은 주로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등으로 편성되어 있었고 해부학 중에서도 일부 분야(신경해부학, 태생학)는 출장강의로 충당했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돌아 생리학에 할당시간이 많았으며 학점으로 환산한다면 12학점 정도 되었으리라고 추산된다.
생리학 강의 내용도 일반생리학, 순환기, 소화기, 호흡기, 내분비, 혈액, 감각, 자율신경계 등에 치중하였고, 신장, 체액, 중추신경 등에 대해서는 일반개념 정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지금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이 있다. 생리학 용어도 해방 직후에는 독어를 사용하였으나 미군정 치하에서 점차 영어로 바뀌었다.
이종륜 교수는 1954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으므로 1956년부터 길원식 강사가 강의와 실습을 전담하게 되었다. 1957년부터는 프린트 교재를 사용하였으며 이 교재는 길원식 강사가 Houssay의 Human Physiology, Best & Taylor의 Physiological Basis of Medical Practice, Fulton의 Textbook of Physiology 등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었다. 이때도 실습은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demonstration으로 대부분 충당했으며, 실습교재는 주로 일본교재를 사용했으나 이외에도 Sherrington의 Mammalian Physiology, Harris의 Experimental Physiology for Medical Student 등을 참고로 하였다.
1957년에 김재협 조교가 들어와서 학생실습에 참여하였고 그 후 1967년에 미국에서 귀국한 김재협 강사와 길원식 부교수가 강의를 분담하였으며 1970년대에 들어와서 Ganong의 Review of Medical Physiology와 Guyton의 Medical Physiology를 교재로 사용하여 금일에 이른다. 1970년대에는 교실원도 많이 늘어났고 1980년대에는 이종은 조교수와 박병림 강사가 미국 유학을 끝마치고 돌아와서 학생교육에 참여하게 되어 교육면에서도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현재 생리학에 배당된 학점은 7학점이다.

1) 학부 교육

연도
강의시간
실습시간
학점
수강학년
교재
1994년
108
64
7
1
Guyton. Textbook of Medical Physiology
Ganong. Review of Medical Physiology
吉洹植. 自律神經系

2) 타 학과 강의

연도
학과
구분
강의(실습)시간
학점
교재
1994
치의학과1
필수
144
4
의학과와 동일
간호학과2
필수
46
4
김정진. 생리학

3) 대학원 교육

연도
등록 학생 수
생리학
학위취득자
석사
박사
전공자
비전공자
석사
박사
1992
5
12
2
15
2
6
1993
4
13
2
15
3
5
1994
7
12
2
17
2
2
 
5.

1) 교실이 연구, 교육(학부 및 대학원) 등에서 획기적인 변모를 보인 시기와 요인
1980년대 이후: 교실원 수 증가
2) 교실과 우리나라 생리학 연구와 교육에 있어서 문제점과 그 개선책
(1) 연구인력의 부족: 특히 타 학과가 대학원생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는 데 반하여 의학과에는 연구에 전념할 대학원생이 크게 부족하다. 해결 방법은 의학석사학위 과정을 非의대출신에게 이수토록 장려하는 것과 연구비를 사용하여 postdoctoral fellow를 고용하는 길이다.
(2) 비전임 대학원생수를 감소시킬 필요가 있음. 그 대신 외부 연구비 확보에 크게 노력해야 할 것임. 대한의학회나 대한의사협회 등에서도 기초의학 발전을 위한 투자가 필요함을 인식해야 됨.